top of page

2017 Pams Choice: Ten Years, Please

 

 

Ten Years, Please

Namsan Arts Center Drama Center 
2017/10/18~2017/10/22 

 

Director: Jewyo Rhii, Hyunjin Kim

Script: Jewyo Rhii, Hyunjin Kim

Conception: Hyunin Kim (Director of Curatorial Lab Seoul)

Stage Art: Jewyo Rhii (Artist)

Sound Art and Composer: Hankil Ryu, Yuen Chee Wai

Light: Myung-jun Noh

Choreographer: Yanghee Lee

 

Assistant Director: Jiyoung Jung, HyoJin Yi

Administration: Jiyoung Jung (Curatorial Lab Seoul)  

Stage Managing: HyoJin Yi

Stage Set Production: Sunmin Kim (set devices and structures),

                                    Shinhoo Lee (moving-image)

Subtitle Production: Soyoung Kim

 

Performer: Japil Eun, Enae Lee, Woojin Jeon, Yeo Eun Jung, Bekhan Joo

Voice: Sunmin Kim, Sora Kim, Wonjae Lee, Yoonhwa Yang, Jewyo Rhii,

           HyoJin Yi, Yeo Eun Jung, Changyeon Pyo

 

Photo Documentation: Hyunwoo Jo

Video Documentation: 57STUDIO

 

Organization: Seoul Foundation for Arts and Culture, Curatorial lab Seoul 
Production: Namsan Arts Center, Curatorial lab Seoul

Support: Maeil Dairies Co., Ltd, Seoul, PAMS Choice


Special Thanks: Young Jun Lee, Seoyoung Chung, Sora Kim, Jenna Ku,

                           Jinsang Yoo, Hongsok Gim, Jina Park, Yiso Bahc, Gun-young Jo,

                           Yeon Woo, Jiwoo Kim, Taehwan Jung and every staff-members of

                           Namsan Arts Center.

 

 

기획의 글 / 김현진  

 

이 공연은 작가가 작품을 보관할 ‘공간’을 마련하지 못하는 현실 -대부분 경제적인 현실에서 기인한- 로 부터, 어느 작가의 수년간의 미술활동이 사라질 것이냐 보존될 것이냐는 기로에서 ‘유보’ 혹은 ‘유예’를 선택하며 만들어졌던 2007년의 <십 년만 부탁합니다>라는 전시로부터 시작되었다. 유보와 유예의 방식은 사람들의 도움을 통해 -사실 작품을 원하는 사람들의 신청을 받아 그들의 공간에 십 년간 의탁하는 방식으로- 작품의 생을 십 년 간 연장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십 년, 우리는 작품을 다시 찾아와 이들을 무대의 주인공으로 올리려 하고 있다.

 

아마도 이 작업에 대한 관객들의 일차적인 관심은 작가 개인의 여의치 않음으로 인해 예술 작업을 다른 사람들에게 위탁하게 되었다는, 좀처럼 흔치 않은 이 논픽션에 대한 호기심에서부터 출발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기획자인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겨 났다. 작업을 위탁하고 다시 불러 모아 무대에 세우는 이 이야기, 이것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 지난 십 년의 알 수 없는 시간, 이 모든 것을 포함한 것 속에서 결국 만들어지고 나아가는 것은 무엇일까? 작품들의 삶은 작가가 손을 놓은 그 순간 완성된 것일까? 작품은 어떻게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가? 그들의 의탁해 있던 그 십 년이란 시간이 우리에게 준비해 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새로이 나아가게 하는 가능태가 될 것인가 희극적인 실패의 역사일까, 혹은 양자 사이의 무한 반복일까. 이들의 지침과 고달픔이 우리들에게 호명하는 것이 염세적 사고가 아닌 주체적이고 가능성을 향한 세계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디로부터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인가. 미끄러짐을 반복하는 예술하는 삶을 수용하는 미덕과 자기 분투 그리고 겸허, 이 모든 것들은 누구를 향한 반영이어야 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사실 매우 고전적인 문학과 예술의 질문이다. 사실 작가와 내가 원인이 된 이 논픽션을 공연으로 끌고 오면서 가지고 있었던 욕망은, 시각예술이나 미술 언어가 가진 형식 실험으로 충만한 공연의 예를 만들겠다는 것에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고전적이고 문학적인 풍요로 가득한 시어터에 대한 욕망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우리의 실재하는 상황에서 파생되는 사건과 이야기, 그 긴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며 얻어진 인식과 존재함에 대한 사고를 바탕으로 지금 이곳에서 미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미술을 하는 삶과 작품의 삶이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이야기하는 고전적 시어터인 것이다. 물론 이 시어터의 서사를 이끄는 주인공이자 중심, 그리고 모든 미술이 가능하게 하는 주체이자 매개는 작가 이주요의 사물 오브제들인 ‘작품들’이다.

<십 년만 부탁합니다>가 필연적으로 극장을 향한 것은 작품들이 위탁된 십 년이라는 긴 시간을 생각할 때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더욱 극명해지는 그 시간적 대비 때문이기도 했다. 보통 한두 달 동안 하루 8시간 정도 주구장창주야장천 디스플레이 되는 미술 전시장에 비해, 한 시간 여 동안 서사를 펼치는 공연의 장은 오브제의 극적 소생과 공적 부활을 더욱 강렬하게 해 준다.  

그들의 빛남, 떨림, 의기소침, 자신감과 같이 인격적인 부여를 드러내는 말로부터의 즉자적 연극성, 작품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말하는 작은 스토리텔링의 연속, 사물을 움직이는 인간과 인간에 의해 움직여지는 사물이 서로 주, 객체의 위치를 끊임없이 이동하는 위계의 전복, 오브제의 질량과 무게, 재료의 속성을 소리로 환원하여 오브제에 캐릭터를 부여하는 물질적인 사운드 작업, 조명을 통해 반짝이고 빛나는 오브제가 되는 애니미즘적 경험, 움직이지 않음으로부터 살아 움직이는(animate) 것을 포착하는 시각 기반의 미술적 경험 등등이 이 한편의 공연에서 우리가 활용하고 엮어내는 요소들이다.  

 

물질과 형을 다루는 시각성, 문학적 시간성, 공간성이 종합되는 공동체적 예술작업에 대한 로망이 마주한 시어터 제작 과정의 좌충우돌은 녹록지 않았다. 미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70여 분의 시어터는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비효율적이고 쓸모가 별로 없는 이 질문들을 위해 -또한 그것으로부터 스스로 해답을 어찌 내야 할지 몰라 무진장 괴로워하고 이 상황의 원흉을 탓하고 미워도 하며- 프리프로덕션부터 장작 2년간의 시간을 보냈다. 아마도 이 비효율적인 질문을 거듭하는 상태, 그리고 그로부터의 고달픔을 자초하는 삶, 그 고달픔 속에서 가능성을 끊임없이 끄집어 올리는 멈추지 않는 퍼포먼스, 이 모든 것이 사실은 미술 혹은 예술하기의 미련함이자 비교 불가능한 고전적 가치일 것이다.

 

사운드 컨셉 / 류한길

10년 주기로 발생하는 나선형 소용돌이 음모론

 

“십 년만 부탁합니다”에서 이주요 작가의 작업들은 10년의 시간 동안 타인들의 손에 맡겨졌다. 마찬가지로 김현진 큐레이터는 이 작업들 중 하나를 10년 동안 보관했고 또한 누군가의 손에 의해 보관되고 있는 작업들에 대한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다. 나는 10년 동안 이런 사실들을 전혀 몰랐다.

10년의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시 연락을 취하고, 3650일의 세월을 견딘 작업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87600시간 동안 작업들 위에 쌓인 먼지들의 질량이 우리의 세계라는 중력장의 한 지점을 살짝 누를 때, 부지불식간에 나선형 소용돌이라는 것이 생성된다. 사실 그 10년의 시간과 기억들 그리고 질량들은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는데, 나는 괜히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그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었다. 10년의 시간을 통해 나를 정의할 수 있는 단어는 '비겁함'이다. 그런데 그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면서 나를 걸고넘어진 것은 친한 싱가포르 출신의 뮤지션인 Yuen Cheewai였다. 보통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면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어디가 먼저고 나중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데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먼저 휘말린 것이 그 친구였는지 내가 휘말려서 그가 휘말린 것인지는 구분이 선명하지 않다. (기획이 구체적으로 시작되던 시점에 김현진 씨는 싱가포르에 머물고 있었고 두어 차례 Yuen Cheewai와 접촉을 취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쨌든 우리는 소용돌이 속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누가 더 억울한지 남 탓 경쟁을 할 수 있다.

 

문제는 나선형 소용돌이. 즉 하나의 중심을 기준으로 회전하는 운동 에너지라는 그 자체가 소리 합성법과 음향 이론들 사이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라는 사실이다. 그 문제를 깨달은 시점은 작년 10월 문래 예술 공장에서 있었던 이 작업의 파일럿 버전이 실행된 이후였다. 그때에는 모든 것이 다급했기 때문에 시간 내에 작품이 무대 위에서 필요로 하는 음향적 조건들을 처리하는데 급급했었다. 이후 1년의 준비 시간이 더 주어지면서 최근 10년 정도의 시간을 활동하며 내가 가지게 되었던 소리에 대한 인식들과 아직 시도해 보지 못한 음향 합성 이론들을 살펴볼 수 있었고 거기에서 소용돌이 에너지와 음향의 관계를 더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나는 개인적인 작업 활동 안에서도 10년이라는 시간 주기의 종착점에 도달했고, 다음 10년의 주기를 시작하기 위한 준비 지점에서 소용돌이에 의해 이 상황이 가속도가 붙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계획 자체는 의외로 단순했다. 먼저 각각의 등장하는 사물들에게 고유한 주파수를 배정하고 그 주파수를 기음으로 하는 배음 조건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사물들이 말을 하거나 어떤 동작을 행하거나 이동을 하는 조건들을 가능한 한 모두 소리들 자체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루어지면 이 작품의 서사와 안무 등에 실시간으로 대응하는 사물들의 움직임 자체는 하나의 악보로서 음악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고 음향적으로도 같은 운동의 장 속에서 기능할 수 있다. 

 

내가 무대 위에 형성되는 운동 에너지 서사 속에서 같이 호응하는 소리의 요소들을 단단하게 구축할 수 있다면, Yuen Cheewai는 그것을 기반으로 삼아 많은 부분들에 즉흥적 요소들을 가미할 수 있다. 예전에 밴드 생활을 할 때 농담 삼아 했던 이야기가 있다. 드럼과 베이스가 기초를 단단히 잡고 있으면 기타와 보컬이 아무리 엉망진창이어도 음악적으로 말이 된다고. 그런 지점에서 Yuen Cheewai는 오랜 시간 즉흥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시시각각으로 예정에 없이 변하는 상황에 대한 가변적인 대응에 매우 능숙하다.

어쨌든 돌발 요소라는 것은 어디에나 필요한 법이다. 문제는 그것이 일종의 자연의 이치와 같다고 해봤자 마음이 편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계획은 단순하지만 그것들을 모두 구현해 내는 데에는 기술적으로 너무 많은 것들이 나에게 요구되었다. 그것이 정말 효과적으로 현장에서 구현이 되는지는 지금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도 확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무대 경험이 있다 해도 작업 자체가 보통의 무대 기반의 작품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고 이런 특정한 문제에 대해선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말할 것도 없고, 시각 예술가로서 이주요씨도 갤러리가 아닌 무대 작업을 하면서 많은 혼란스러움을 겪었으며, 전시 큐레이터로서 활동해온 김현진씨도 무대 작업의 총괄 업무를 담당하면서 많은 혼란스러움을 겪었다. 각자에게 익숙했던 전문적 영역에서 다소 어긋난 각도로 한 사람이 회전을 시작하고 그 힘에 의해 두 번째 사람이 회전을 시작하고 거기에서 증폭된 회전력은 지나가던 나를 회전 시키고 안무가인 이양희 씨를 회전 시키고… 기타 등등. 그래서 이런 총체적인 회전력의 혼란스러움에 대해 나는 일종의 음모론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것에 대해 확신을 한 순간이 있었다. 그것은 조명 리허설 당시에 벽에 투사된 나선형 소용돌이 문양을 모두가 잠깐이지만 멍하니 바라볼 때였다.

bottom of page